처음에 '세계와 화해하기'라는 소제목을 보았을때 평화 같은 주제를 다루게 될거라는 생각을 했다. 세계와 화해한다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며, 피히테, 셸링, 헤겔 세 사람의 이름을 봤는데 헤겔 밖에 모르겠다. 아... 물론 헤겔도 뭘 안다기보다는 그냥 이름을 많이 들어봤다 정도지만.

 

수업은 칸트가 남긴 문제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칸트는 크게 두 가지 문제를 후대 철학자들에게 남겼다. 첫번째는 역사성에 관한 문제, 즉 이성이 '시대의 산물'인가 혹은 '보편적'인 것인가 라는 문제이다. 두번째는 학문으로서 철학의 문제이다.

 

역사성에 관한 문제는 이성이 '시대의 산물'인가 혹은 '보편적'인 것인가 라는 문제이다. 첫번째는 개체화. 특정한 역사적 현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시대마다 독특하고 특별한 것으로 이성을 보며, 이성의 본질이 그때그때 다르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이성이 보편적이라고 한다면, 변화와 운동의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이성을 바라본다.

 

학문으로서 철학의 문제는 현상계와 예지계를 구분하는 문제와 물 자체(Ding an sich)의 문제로 나뉜다. 칸트는 순수이론이성과 실천이성을 통해 감성과 도덕을 나타냈다. 순수이론이성은 물리학과 같은 과학이 대표적이며, 실천이성은 윤리학이 대표적이다. 이 둘을 합하려는 노력을 통해 철학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물 자체의 문제. 물 자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이다. 지성의 작용은 항상 현상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칸트는 감성(수용적 직관)을 촉발하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에 물 자체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칸트의 판단근거는 인과성(선험적 종합판단)이다. 인과성은 현상계에서만 경험과 동시에 발현되기 때문이다.

 

그 외에 주체의 문제도 있었다. 이성을 법정에 피고로 세울때 재판장도 이성인데, 재판장으로서의 이성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나타난 피히테(Fichte)!

피히테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현상계와 예지계의 설명하기. 즉, 물 자체와 현상을 통일적으로 설명하기. 두번째는 초월적 주체의 문제를 해명하기.

피히테는 자신의 문제 의식을 설명하기 위해서 자아와 비아를 통일시키는 원리로서 자아를 설정하고 지식학(Wissenschaftslehre) 3원칙을 세운다.

 

제 1원칙 "나는 활동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제 2원칙 "자아는 비아를 반정립한다. 나아가 자아는 비아를 자기 안에서 반정립한다."

제 3원칙 "자아는 자아 안에서 가분적 자아에 대해 가분적 비아를 반정립한다."

 

여기서부터 머리가 아파지는 부분이 용어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현상계와 예지계만해도 머리가 아팠는데, 이 사람은 또다른 용어를 정립해서 사용한다. "나"가 있고, "나" 안에 "감각하는 나"(가분적 자아)와 "감각되는 사물"(가분적 비아)이 존재한다. 이 모든 것을 합쳐서 "자아"라고 칭한다.

 

피히테의 관념론을 주관적 관념론이라고 칭한다. 선험적 자아 이전의 활동 그 자체로서의 자아가 등장했고, 자아를 출발점으로 삼아 모든 대상을 자아의 정립으로 환원하여 일원화했다. 그래서 물 자체의 가정으로 생긴 진리의 문제나 체계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했다. 즉, 물 자체를 비아로 설정하고, 실재는 자아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대상에 대한 앎은 주체와 대상이 일치하지 않으며, 자기에 대한 해명이고, 절대적 자아의 해명과 탐구 과정이라고 보았다. 또 체계의 문제는 자아의 다양한 표현(다차원성)이라고 생각했다.

 

 

두번째는 셸링(Schelling)!

이 사람의 이름은 사실 자주 들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가 Schellingstrasse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셸링이 그 셸링인지 모르고 다녔을 뿐. 수업을 듣고 보니 이 사람 이름을 대학교 건물이 가득한 쪽에 붙일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셸링의 관념론은 객관적 관념론이라고 불린다. 셸링은 주로 2가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첫번째는 칸트의 이원론적 세계관과 자기 의식. 두번째는 피히테 비판. 대상/물 자체, 자연은 자아에 의해 산출되거나 도출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셸링은 칸트의 자기 의식을 비판하며 통각이 절대적이지 않다고 보았다.

 

물 자체 -> 감성, 시공간 --상상력-->지성의 범주(12개) -> 인식

 

이런 과정을 거치는 통각이 모여 나를 이룬다고 보았다. 통각의 작동은 항상 대상의 제약을 받으며(경험의 제한), 자기 인식은 대상의 규제를 받기 때문에 절대적이지 않다. 그래서 셸링은 절대적 원리를 찾으려 한다. 그가 찾은 자아는 지적으로 직관되는 자아(<철학의 원리로서의 자아>).

 

피히테에게 절대적 자아란, 지식학의 원리 및 근거라면, 셸링에겐 지식학의 근거일뿐만 아니라 모든 학적인 전제를 직관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을 주체화 혹은 자아화한다. 셸링에게 있어 자연은 물질이자 정신 곧 동일한 현실의 다른 측면이며, 자연 개개의 현상들은 주체-객체의 통일된 절대자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헤겔(Hegel).

 

그의 저서 <정신현상학>에 나온 내용을 주로 다루었는데 진리가 발전하는 방법은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과 같다고 설명해주셨다. 현상 A, B를 설명하는 패러다임 (가)에서, 현상 C가 등장함으로서 현상 A, B, C를 함께 설명하기 위해 패러다임 (나)가 등장하고 그런 과정을 반복함으로서 진리가 발전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나온 패러다임을 절대정신이라고 보았다.

 

절대정신의 운동으로 변증법이 있으며, 이 변증법은 출발이 되는 개념에서 부정이 부과되고 투쟁이 발생하며, 투쟁이 높은 지평으로 상승(aufheben)함으로 해소가 되어 새로운 개념이 도출되고 앞의 과정을 계속 반복하다보면 절대적 관념론에 이른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의 관념론을 절대적 관념론이라 부른다. 절대적 관념론은 절대자에 대한 관념론이며, 절대 정신을 통한 일원화를 시도한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와 함께 변증법이 계속되고 있다.

 

 

피히테, 셸링, 헤겔을 일컬어 독일의 관념론자들이라 부른다. 그들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무덤에서 나오고 싶을수도 있겠지만. 관념론부터는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절대자 또는 절대정신, 자연 등으로 표현되는 나를 포함한 거대한 정신이다. 이들은 세계관의 변화를 이끌어내며 철학을 또 한단계 발전시켰다.

 

 

정리를 한다고 했는데, 벌써 2주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 곳도 많고, 필기하느라 급급했던 부분도 많은 것 같다. 또 오류도 엄청날 듯하다. 이 부분은 스스로 공부하면서 채워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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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7:41-17:58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다

 

그 블레셋 사람도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그 블레셋 사람은 다윗을 보고 나서, 그가 다만 잘생긴 홍안 소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그를 우습게 여겼다. 그 블레셋 사람은 다윗에게 "막대기를 들고 나에게로 나아오다니, 네가 나를 개로 여기는 것이냐?" 하고 묻고는,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였다. 그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어서 내 앞으로 오너라. 내가 너의 살점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마."

그러자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에게 말하였다.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 주님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 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을 모조리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 또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

드디어 그 블레셋 사람이 몸을 움직여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다윗은 재빠르게 그 블레셋 사람이 서 있는 대열 쪽으로 달려가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을 하나 꺼낸 다음, 그 돌을 무릿매로 던져서, 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맞히었다. 골리앗이 이마에 돌을 맞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렇게 다윗은 무릿매와 돌 하나로 그 블레셋 사람을 이겼다. 그는 칼도 들고 가지 않고 그 블레셋 사람을 죽였다. 다윗이 달려가서, 그 블레셋 사람을 밟고 서서, 그의 칼집에서 칼을 빼어 그의 목을 잘라 죽였다.

블레셋 군인들은 자기들의 장수가 이렇게 죽는 것을 보자 모두 달아났다.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 함성을 지르며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서, 가이를 지나 에그론 성문에까지 이르렀다. 그리하여 칼에 찔려 죽은 블레셋 사람의 주검이, 사아라임에서 가드와 에그론에 이르기까지 온 길에 널렸다. 이스라엘 자손은 블레셋 군대를 쫓다가 돌아와서, 블레셋 군대의 진을 약탈하였다.

다윗은,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갔으나, 그의 무기들은 자기 장막에 간직하였다.

사울은,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에 맞서서 나가는 것을 보면서, 군사령관 아브넬에게 물었다. "아브넬 장군, 저 소년이 누구의 아들이오?" 아브넬이 대답하였다. "임금님, 황공하오나 저도 잘 모릅니다." 왕이 명령하였다. "저 젊은이가 누구의 아들인지 직접 알아보시오." 마침내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오자, 아브넬이 그를 데리고 사울 앞으로 갔다. 다윗의 손에는 여전히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가 들려 있다. 사울이 다윗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의 아들이냐?" 다윗이 대답하였다. "베들레헴 사람, 임금의 종 이새의 아들입니다."

 

<묵상>

 

싸움 초반부 기싸움. 흡사 래퍼들의 디스전을 보는 것 같다. 혹은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연대기>의 전쟁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디스전 후 다윗과 골리앗은 일전을 벌이고, 다윗을 얕보았던 골리앗은 죽고 만다. 디스전 할때 다윗이 말한 것처럼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주님께 달린 것이며, 주님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 주실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전쟁은 다윗이 이겼다.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자주 전쟁과 같다. 이 전쟁에서도 이기고 지는 것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주님을 믿으며, 기도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이걸 자주 잊는다. 어떻게 하면 그걸 잊지 않고, 적어도 하나님께 붙어 있을 수 있을까?

하나님께 붙어서 살아가는 것만이 답인 줄 알면서도 그러지 못할 때가 많아서 답답하다. 예전의 습관이 자꾸 되살아나고, 이렇게 해서 되겠냐는 세상의 말들이 들린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면서 매일 성실하고 충실하게 시간을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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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7:28-17:40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기를 자청하다

 

다윗이 군인들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맏형 엘리압이 듣고, 다윗에게 화를 내며 꾸짖었다. "너는 어쩌자고 여기까지 내려왔느냐? 들판에 있는, 몇 마리도 안 되는 양은 누구에게 떠맡겨 놓았느냐? 이 건방지고 고집 센 녀석아, 네가 전쟁 구경을 하려고 내려온 것을, 누가 모를 줄 아느냐?" 다윗이 대들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였다는 겁니까? 물어 보지도 못합니까?" 그런 다음에 다윗은, 몸을 돌려 형 옆에서 떠나 다른 사람 앞으로 가서, 똑같은 말로 또 물어 보았다. 거기에서도 사람들이 똑같은 말을 하였다.

다윗이 한 말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누군가가 그것을 사울에게 알렸다. 그러자 사울이 그를 데려오게 하였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저 자 때문에 사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말렸다. "그만두어라. 네가 어떻게 저 자와 싸운단 말이냐? 저 자는 평생 군대에서 뼈가 굵은 자이지만, 너는 아직 어린 소년이 아니냐?" 그러나 다윗은 굽히지 않고 사울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의 종인 저는 아버지의 양 떼를 지켜 왔습니다. 사자나 곰이 양 떼에 달려들어 한 마리라도 물어가면, 저는 곧바로 뒤쫓아가서 그 놈을 쳐죽이고, 그 입에서 양을 꺼내어 살려 내곤 하였습니다. 그 짐승이 저에게 덤벼들면, 그 턱수염을 붙잡고 때려 죽였습니다. 제가 이렇게 사자도 죽이고 곰도 죽였으니, 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도 그 꼴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자를 어찌 그대로 두겠습니까?" 다윗은 말을 계속하였다. "사자의 발톱이나 곰의 발톱에서 저를 살려 주신 주님께서,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저를 살려 주실 것입니다." 그제서야 사울이 다윗에게 허락하였다. "그렇다면, 나가도 좋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길 바란다."

사울은 자기의 군장비로 다윗을 무장시켜 주었다. 머리에는 놋투구를 씌워 주고, 몸에는 갑옷을 입혀 주었다. 다윗은, 허리에 사울의 칼까지 차고, 시험삼아 몇 걸음 걸어 본 다음에, 사울에게 "이런 무장에는 제가 익숙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무장을 한 채로는 걸어갈 수도 없습니다." 하고는 그것을 다 벗었다. 그렇게 무장을 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 다윗은 목동의 지팡이를 들고, 시냇가에서 돌 다섯 개를 골라서, 자기가 메고 다니던 목동의 도구인 주머니에 집어 넣은 다음, 자기가 쓰던 무릿매를 손에 들고, 그 블레셋 사람에게 가까이 나아갔다.

 

<묵상>

 

이때의 다윗을 보면 신라시대 관창이 생각난다. 역사 시대 초반에 청소년들을 앞세워서 전쟁을 하는 것이 나름의 트렌트였나보다.

 

다윗이 온 것을 보고, 그의 형 엘리압과 사울의 반응이 달랐다. 엘리압은 놀러왔냐며 혼을 냈지만, 사울은 걱정하며, 그만두기를 청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첫 왕이 될만한 사람이기는 했나보다. 다윗은 사울을 설득하여 결국 전쟁터로 향한다. 다윗을 위해 사울은 군장비를 주지만 익숙하지 않은 군장비는 다윗에게 도움이 될 수 없었다. 익숙한 돌 다섯 개를 들고, 전쟁터에 나선 다윗.

 

이 부분을 읽을 때면 항상 신이 난다. 난 이미 그 결말을 알기 때문이다. 다윗은 어땠을까? 주님께서 나를 살려 주실 것이라고 고백한 다윗은 어떤 마음으로 그 전쟁터에 나간 것일까? 두렵지 않았을까? 아니면 정말 담대했을까? 어떤 마음이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다윗은 나아간다.

 

난 나의 결말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 하는 일들의 결말을 알지 못한다. 여전히 안개속에 쌓여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나는 나의 전쟁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함을 안다. 두렵지만 담대한 마음으로 가야한다. 결말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루어 가야할 일들을 이루어 가실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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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운이 좋게도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 이스라엘에 갈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만났던 어느 교수님과 한 방을 쓰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은 팔레스타인 관련 평화 세미나를 위해 이스라엘에 오셨다. 그래서 그분을 통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이야기를 들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에 대해 아주 단편적인 것들을 알게 되었다. 아파도 마음대로 병원에 가지 못하고, 그 안에서 나오려면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 등등. 팔레스타인 이야기가 많이 안타까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내 관념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본 영화. 더 아이돌. 이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진행된 제5회 아랍영화제에서 보게 된 영화이다. 이 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워 온 모하메드의 이야기이다. 모하메드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상황에 놓여 있는데 그건 바로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산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모하메드는 누나와 친구 2명과 악기도 사고, 공연도 하면서 지낸다. 그러다 누나가 갑자기 쓰러지고 신부전증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신장을 이식 받거나, 혈액 투석을 계속 하는 수 밖에 없다. 누나는 혈액 투석을 받다가 쓰러져 죽고 만다. 누나의 죽음 이후 좌절에 빠진 모하메드.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청년이 된 모하메드. 엄청 귀여운 꼬마가 갑자기 아저씨가 된 느낌이라 잠시 놀랬다가 다시 이야기에 집중. 모하메드는 택시기사를 하며,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대학을 다닌다. 음악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던 무하마드는 음악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릴 때 그에게 노래를 가르쳐준 선생님, 친구들과 스카이프를 통해 콘테스트에 지원도 하지만 열악한 전기 상황 때문에 여의치 않다. 또다시 포기할 뻔 했지만 다시 용기를 내어 이집트 카이로에서 진행되는 아랍 아이돌 예선에 참여하려고 한다. 하지만 가자 지구에 살고 있기에 카이로로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온갖 역경 끝에 예선이 열리는 곳에 도착했지만 번호표를 받지 못한 그는 또 좌절한다. 지키는 사람들을 피해서 예선 경연장에 들어간 모하메드는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예선을 치르게 되고 합격한다. 그리고 승승장구.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모하메드가 자신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주길 바라고, 올라갈수록 모하메드는 압박감을 느끼지만 결국 우승!

 

2012년 아랍 아이돌 우승자 모하메드 아사프의 실화를 영화화했다. 100분이라는 시간이 훅 지나갔다. 모하메드가 가진 스토리와 음악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팔레스타인에도 사람들이 살고, 아이들은 꿈을 꾸는구나. 내가 알 수 없었던 한 사람을 알게 되어 기뻤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아주 조금 더 팔레스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좋았다. 헐리우드 영화나 우리나라 영화와 또다른 느낌들이 참 신선했다. 헐리우드 영화도, 우리 영화도 굉장히 자극적이고, 선정적인데 이 영화는 따뜻한 느낌이다. 이런 영화를 우리 영화관에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참 아쉽다.

 

영화가 끝나고 혼자 걸어오면서 생각했다. 모하메드처럼 갑자기 내가 한국의 목소리를 내야하는 자리에 있다면? 나 또한 정말 많은 부담이 될 것 같다. 모하메드는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를 불렀을 뿐인데 말이다. 평범함 또한 은혜다 싶었다. 나에게 무엇인가가 주어져야 한다면, 내가 무엇인가 감당할 수 있을 때 주어졌음 좋겠다. 그리고 또 생각한건 음악이 가진 힘. 사람이 일어설 힘을 주는 희안한 것. 위로도 해주는 것. 나중에 모하메드가 불렀던 노래 가사를 알 수 있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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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소소한이야기 2016.05.25 12:27

그 누구도 이 글을 읽기 위해 들어오진 않겠지만, 요즘 나는 이렇게 살고 있었다.

 

지난주부터 이상하게 바쁘기도 하고, 이상하게 피곤하기도 해서 블로그질을 하지 못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도 게을러졌다. 몸도 마음도 이상하게 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제에서야 기다렸던 일의 결론이 나고, 좀 슬펐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인 줄 알았다.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한 일은 그다지 없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면 어떤 결과가 나왔었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 살은 빠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노력을 한다고 해서 다 되는 일이 아니었다. 또, 아기를 가지는 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2014년 1월 초 나는 뭣도 모르고 다이어리에 이렇게 썼었다.

"2014년 연애, 2015년 결혼, 2016년 출산"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2014년에 남편을 만났고, 2015년에 결혼을 했다. 하지만 2016년에 출산은 이미 물건너갔다. 엄마가 되고 싶은데 그건 내 노력이 필요하면서도 노력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란 것을 깨닫고 있다.

이제까지는 가보지 않았던 온갖 인터넷 글을 살펴보면서 아기를 갖지 못해서 마음이 아픈 사람이 세상에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작은 공간에서 살고 있었단 말인가. 임신테스트기를 할때마다 느끼는 절망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난 아직 임신 준비한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도 이렇게 마음이 좋지 않은데, 시험관 아기 준비하시는 분들의 마음은 상상조차 어렵다.

게다가 세상은 왜 이리도 아이러니컬한건가. 아기를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아기가 오지 않고, 20대 초반 남자친구랑 관계를 한 사람들에겐 아기가 쉽사리 오고 그들은 아기를 지우려고 한다. 그런 글들 사이에서 난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저 난 2017년엔 아기를 가지지 못해 힘든 사람들 모두 엄마가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 또한.

 

철학 수업이 끝났고. 월화 밤마다 <또 오해영>에 집착하면서 보며 연애하는 것처럼 설레고. 그 외 시간은 게으르게 지내고. 그러고 있다.

 

남은 5월은 좀더 열심히 가열차게 보내야겠다. 운동도 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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